노 전대통령을 사랑하는 분들께 개인적으로 사과합니다 정치

지난 토요일 12일 저녁에 한국-그리스 축구경기를 봤습니다. 축구광팬으로서 2-0 승리 너무 기뻤습니다. 한국선수들이 유로2004 우승국 그리스를 맞아 체력, 기술, 전술적으로 압도하는 것을 보고 너무 자랑스러웠습니다. 축구도 이제 세계 수준에 올랐구나 하는 감회가 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전도 봤습니다. 우리가 월드컵축구 원정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상대인지라 그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전력분석인 셈이죠. 그렇게 무리를 한 탓인지 늦잠을 잤습니다.

 아점을 먹고 소파에 앉아 몇일 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 전기 <운명이다>를 읽었습니다. 소설처럼 술술 책장이 넘어갔습니다. 글재주가 뛰어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 일기, 주변 인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 잘 정리해 놔 읽기가 편했습니다. 그것보다 노 전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콘텐츠가 워낙 훌륭해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여하튼 몇시간에 걸쳐 독파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전기, 자서전류의 책을 읽고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보니, 노 전 대통령은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원칙과 용기를 지난 훌륭한 리더였습니다. 자신의 약점도 잘 아는 참 인간이었습니다. 한미관계, 대북관계, 에프티에이, 대연정, 동서화합, 검찰 개혁 등등. 어느 것 하나 철저한 공부와 자기신념화된 논리 없이 추진한 것이 없었습니다. 원칙에 맞으면 손해를 볼 줄 알면서도 밀고가는, 정치적으로 순진하고 무모하다는 비판을 받을 순 있으나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언제나 우린 이런 지도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저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이 좀 있습니다. 야당 정치인 때 정치부 기자로서 몇번 뵌 적이 있지만, 제가 당시 여당 출입이어서 그리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 정도는 아주 가까이에서 뵜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도쿄특파원을 할 때입니다.  2003년 6월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그땐 외국 방문이 몸에 익지 않았는지 영빈관에서 의장대 사열을 할 때 약간 행동에 박자가 맞지 않아, 보는 제가 안절부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은 관례에 따라 방문 기간 중 어느날 아침 영빈관으로 특파원단을초청해 아침을 함께 했습니다. 그때 전 노 전 대통령이 앉아계신 테이블, 이른바 헤드테이블에 앉았는데 이런저런 말씀을 하시고 특파원들로부터 질문도 받았습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잘 계시죠. 반갑습니다"며 아는 척을 해주셔서 사람을 잘 기억하시는 분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일 중 다른 것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때 일본의 영빈관을 부러워하며 "우리도 이런 영빈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격의 없이 특파원과 담소를 나누는 서민적 모습이 좋았습니다.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노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퇴임 직전에 한겨레와 한 마지막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당시 에프티에이 문제 등이 한창 쟁점화되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진보세력의 공격이 기승을 부리던 2007년 6월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인터뷰어인 김종구 당시 편집국장과 함께 수석부국장으로서, 정치, 경제부장과 함께 동석했습니다. 그때의 인터뷰는 사전 질문지를 제출하고 사진만 찍고 오는 형식적인 인터뷰가 아닌 실질적으로 묻고 대답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터뷰였습니다. 물론 사전에 서면 질문서를 내긴 했지만 그에 구애받지 않고 묻고 대답했습니다. 약속된 시간을 훌쩍 넘겨 12시반까지 2시간 정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모들이 12시 직전에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다고 신호를 보내자, 노 전 대통령께서 `물을 것이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 물으라'고 해 인터뷰가 길어졌습니다. 그때 인터뷰 내용은 신문에 1면 기사 외에 3개면에 걸쳐 크게 펼쳐 썼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저도 질문 기회가 있어 2가지를 물었는데 청와대 쪽의 오프 요청으로 나가지 않은 사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질문은 "대통령께서는 최근 참평포럼에서 2시간씩이나 연설을 했는데 혹시 남의 얘기를 두시간 정도 들은 적은 계시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버럭 화를 내시며 "2시간을 얘기한다고 비판하면 되느냐, 원고 없이 2시간이나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것 아닙니까?"하는 요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현장에도 다니시면서 국민과 소통을 하실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그거 제가 다 다니면 사전에 조율하고 만 시나리오대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쇼는 안 합니다."라는 요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청와대 쪽이 이 두가지는 `빼주는 게 좋겠다'고 해 당시 신문엔 내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다른 권위적인 대통령과 다르다, 참 솔직하다,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대통령이란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운명이다>는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기 전에 막연하게 좋아하고 존경하던 노 전 대통령보다 훨씬 속 깊고 내용 있고 원칙 있는 인물이란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한겨레>에 대한 비판, 실망, 분노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새로운 형식의 대담 시론으로 만든 <직설>이란 난이 노 전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전 사실 노 전 대통령의 전기를 읽기 전에 이 문제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양정철 전 비서관이 쓴 반론과 한겨레의 사과문도 읽었습니다. 한마디로, 한겨레에 근무하는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과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매도하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던 `놈현'이란 용어와 `관장사'라는 용어를 쓰고 이를 제목으로 뽑은 것에 대해 저도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양 전 비서관이 쓴 `부박하다'(천박하고 경솔하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그리고 유감 표명을 하면서 쓴 `쥐잡기'를 위해 만든 란이라는 설명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저도 정론지, 권위지,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품위 있고 촌철살인이 살아숨쉬는 용어를 가려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독운동을 하자는 심정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해를 구하고 싶은 점도 있습니다. 이 난에 나온 대담자들이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기 위해 그런 대담을 한 것은 아니라는 그 진정성만은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저도 그글이 문제가 된 뒤 몇 차례 그 글을 다시 읽었봤지만, 전체적인 글의 맥락은 민주세력이 노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산에만 의지하지 말고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이해합니다. 큰 같음과 작은 실수를 구별해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회사의 많은 사원들도 이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크게 마음 상해하고 있습니다. 아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겨레는 아직까지 스스로 자정하는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서운한 감정을 거두시고 조금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그의 죽음을 정말 안타까워 하고 있는 한겨레 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간곡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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