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주재 한국 대사가 전하는 아웅산 수치 정치
2010.11.16 11:31 Edit
아웅산수지 여사 석방
(수지 여사의 외교단 면담)
화해와 용서. 7년의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수지 여사가 미얀마 주재 외교단에게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이들 두 가지였다. 지금 버마(미얀마)가 필요로 하는 것은 화해이고, 이를 위하여 용서와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 11월 14일 오전 11시, 민주연합(NLD) 당사에서 외교단을 만난 수지 여사는 눈가에 보이는 잔주름이 아니라면 도저히 65세의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푸른색 적삼에 한 송이 꽃을 머리에 꽂은 온화한 모습에서, 긴 가택연금의 단절과 고통을 이겨낸 의지와 인내를 연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수지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린 것은 11월 13일 오후 5시경. 이 날 당연히 풀린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지난주 총선 이후 상황이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혹시라도 불의의 사태를 염려한 당국이 석방을 미룰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수지 여사 자택이 있는 인야(Inya)호수 남쪽 대학로(University Avenue)에는 아침부터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으며, 여사의 석방소식은 즉각 전기처럼 전파되어 함성을 불러일으켰다. 철책으로 가로 막혀있던 담장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수지 여사의 첫 마디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날 밤, 다음날 NLD 당사에서 외교단과 만나고자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예정된 군중연설에 앞서 양곤에 주재하는 각국 외교단과 만나고 싶다는 전갈이었다. 사실 한국대사관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자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같은 대학로에 위치하고 있어, 양곤에 부임한 후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 때마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여사의 자택 앞을 지나다녔다. 따지고 보면 몇 집 건너 이웃인데, 이웃집 주인을 이토록 어렵게 만나는 셈이었다.
외교단 만남에서 수지 여사가 ‘화해’와 ‘용서’에 대해 말한 내용을 좀 더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 미얀마가 당면한 일은 화합이다. 화합은 차이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차이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해와 인내심이며 용서와 관용이다. 화해는 한 쪽만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당사자가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
- 화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구속자 석방이다. 나는 석방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구속된 채로 있다. 이들을 석방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 이번 가택연금 해제에 따른 조건은 없다.
- 당분간 지방이건 외국이건 여행계획은 없다. 양곤에 머물면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그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 지난 주 총선에 대해서는 NLD가 자체적으로 조사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외교단과의 만남에는 양곤에 있는 모든 대사들이 초청되었으며, 한국, 일본, EU 회원국가, 미국, 호주, ASEAN 등 대부분 국가에서 대사가 직접 참석하였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캄보디아는 실무자를 보냈고, 북한, 세르비아, 라오스는 참석하지 않았다.
(미얀마 총선거 평가)
어제의 외교단 만남에 대한 각국 대사관의 참석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11월 7일 치러진 미얀마 총선결과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에도 온도차가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사뭇 비판적이다. “국제사회가 자유롭고 공정하고 포괄적인 선거를 촉구하였으나, 그렇게 하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요지다. 반면, 중국은 11월 9일 외교부 대변인이 “미얀마의 순조로운 선거를 환영”하고, “금번 선거가 미얀마 민주화 로드맵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ASEAN 의장국인 베트남도 “이번 선거가 민주화 7단계 로드맵의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환영하고, “미얀마가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화합과 민주화 과정을 더욱 가속화할 것을 기대”하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총선에 대해 아웅산 수지 여사는 보이코트를 결정하였고, 유권자들에게도 줄곧 투표에 나서지 말 것을 종용하였다. NLD는 이번 선거가 철저한 관권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관련 사례를 수집 중이다. 사실 선거 실시 이전부터 선거법과 정당법 등이 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으며, 여당이 적어도 전체 의석의 75% 정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게 하여 충분한 의석 확보가 예견되기 때문에, 적어도 투표와 개표는 공정하고 자유롭게 진행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기대가 성급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개표를 시작한 당일 밤과 이튿날 아침 사이에 ‘부재자 투표’라는 몰표가 대거 쏟아지면서 야당 후보가 이기던 지역에서 여당후보가 막판 역전을 하는 사례가 상당수 일어났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여당이 전체의석의 85%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부정선거’, ‘각본선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으며, 한 때 선거를 보이코트한 NLD에 대해 ‘전략적 실수’라고 비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거 봐, 내가 뭐랬나”라는 NLD 사람들의 반격에 할 말을 찾기 어렵게 되고 있다고 한다.
수지 여사 석방이 향후 정국전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미얀마 정국은 어쨋거나 군부가 의도하는 대로 가고 있다. 민주화 로드맵에 따라 실시한 총선 자체가 진일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민정부’ 출범과는 거리가 멀다. 총선결과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할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현재까지 수지 여사는 비폭력운동을 주창하고 언제든지 대화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미얀마의 현실과 아웅산 수지 여사의 역할)
지금 미얀마의 현실은 많이 어렵다. 특히 교육이 문제다. 양곤 부근이나 지방에 있는 초, 중등학교에 가보면 그 열악한 상황에 경악한다. 책상과 걸상이 제대로 구비된 곳이 많지 않다. 교과서 보급도 잘 안 된다. 컴퓨터를 비롯한 부교재는 상상하기 어렵다. 아예 학교라는 건물이 없는 곳도 많다.
유엔의 통계자료가 나름 신뢰성이 있다고 보면, 취학연령에 이르는 미얀마 아동의 30% 정도가 아예 학교에 등록을 하지 않으며, 그나마 취학한 70%에서 절반 정도는 도중에 학업을 중단한다. 전체 아동의 35% 정도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셈이다. 전국에 57개 대학(3년제)이 있지만, 졸업생의 수준이 한국과는 차이가 많다. 한마디로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제재조치로 미얀마 사람들이 선진국의 지식과 기술, 문화를 접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지 이미 20여년이 지났다. 이런 상태로 5년, 10년이 더 흐르고 나면 미얀마가 문민통치로 전환하려고 해도 국가를 경영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가택연금에서 풀린 수지 여사가 당면한 첫 째 과제는 찢겨진 민주세력을 규합하고 통일된 입장을 정리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는 교육, 의료, 경제건설 등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려 할지, 이를 위해 정부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인지, 많이 궁금하다. (2010.11.15, 양곤)






